일본어 공부나 할 겸 일본 친구를 사귀고자 Japan guide에 몇 년 전 가입했었다. 그렇게 해서 한국에서 만난 친구 한 명을 제외하면 메일 답장 몇번 하곤 다들 금방 질리는지 연락이 끊기기 일쑤였다. 이메일 펜팔의 한계는 그것이다. 너무나 빨리 답장이 오가기 때문에 몇 번 하다보면 더 이상 할 말도 없다. 역시 사람은 오프라인으로 이어져야만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동물인가보다.

그러던 것이 얼마전에 다시 사이트에 들어가서 프로필을 올렸는데 기다리던 메일은 안 오고 스마일이라는 것이 날아온다. 예전에는 프로필을 올리면 그것을 보고 바로 상대에게 메일을 보내면 그만이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조건 돈이 있어야 뭔가 되나보다. 재팬 가이드 친구 만들기 코너가 유료화로 바뀌어버린 것

몇 번 스마일을 주고 받긴 했는데 이건 호감을 표시하는 정도지 막상 그 사람과 컨택을 하려면 한달에 몇천원이나 되는 돈을 내야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이메일 펜팔친구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찾아보면 무료 펜팔 사이트는 많을테니까. 웃긴건 그 시스템을 갖고 있는 업체가 나라별로 있는 듯한데 재팬 가이드와 시스템은 동일한데도 막상 월드어쩌구 하는 그 본사 사이트에 가입하면 재팬 가이드의 프로필과 호환이 되질 않는다. 똑같은 내용을 또 써야하는 불편함의 연속이다.

프로필도 몇 번 올렸는데 계속 거부당했다고 나와서 두 세번 올리다가 열불 뻗쳐서 문의를 했다. 도대체 무슨 음란하고 부적절한 컨텐츠가 내 프로필에 들었는지,속시원히 말을 해달라고. 그랬더니 답변이라고 온 꼬라지가 지들 규정만 그대로 복사해서 갖다 붙인 무성의한 답변. "쫄리시면 뒤지시든지"라는 속셈이냐? 무슨 부분이 잘못됐다고 집어주지도 않고 더 웃긴건 프로필에 이메일 주소와 같은 개인정보를 올리지 말란다. 결국 지들 돈벌이 수단을 위해 직접적인 컨택을 못하게 이메일 주소조차 올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프로필을 올리면 어느 정도 검토하는 시간이 있는데 직접 이메일 주소를 쓰지는 않고 머리를 굴려서 내 MSN 아이디는 이거.이거.이거라고 올렸더니 얼마 후 아예 계정이 삭제가 되서 로그인도 못하게 만들어놓았다. 빌어먹을 놈들.. 이제 안 간다 재팬 가이드는.


어쨌든 그렇게 재팬 가이드를 관두고 찾은 것이 인터팔이다. http://www.interpals.net/
인터팔은 내가 원하던 대로 프로필을 올리면 관심있는 상대가 메일을 보내서 연락을 하다가 서로 맘이 맞으면 친구도 맺는 그런 시스템이다. 한 마디로 본질적인 무료 펜팔 사이트인 셈이다. 여기서도 공개 프로필을 올리면 다른 사람들이 내 프로필을 보게 되고 내 프로필을 본 그들이 누구인지 나도 확인할 수가 있어서 좋다. 이건 재팬 가이드도 마찬가지였지만 거긴 유료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으니 여기가 더 좋다.

세계 어디나 미인, 미남이 인기있는 것은 당연지사. 프로필 사진이 좀 이쁘다 싶으면 리플이 주루룩 달려있는 것이 부지기수다. 여담이지만 이상하게도 난 외국에 나가서 한국인을 마주치거나 보는 것이 싫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외국까지 나가서 한국인을 보는 것이 반갑기는 커녕 피하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중국애들이 떼지어서 다니며 시끄럽게 안하무인 행동하는 모습들이 머릿속에 너무 깊게 박혀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래서인지 펜팔 사이트에서도 외국 사람들 사진에 주루룩 달려있는 한국인들의 리플만 보면 그 사람에게 메일을 보내고 싶다가도 그런 마음이 싹 사라진다. 특히 한국에 조금이라도 호감을 나타내는 외국 사람들의 프로필엔 언제나 한국인들로 넘쳐난다. 마치 예전부터 봐온것처럼 반가워하고 잘 지내냐는 둥의 리플이 달려있다. 지극히 가식적인 것 같은 그런 모습들이 싫어서 당연히 그 페이지는 스킵해버린다.

뭐.. 어쨌든 여행을 하면서 사귄 친구들과 페이스북 놀이하는 것도 지겨워져서... 별로 할 말도 이젠 없고 여행으로 만난 사이는 그 때뿐인 것 같다. 안 보면 멀어지는 것이 당연지사라지만 그 친구들로부터 먼저 연락오는 경우도 드물고. 뭐 이런저런 공허함때문에 다시 펜팔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것 역시 긴 관계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작문 연습은 되니까 그 생각으로 한다.

인터팔에서 내가 먼저 메일을 보낸 폴란드 소녀가 하나 있다. 그 친구는 제법 성심성의껏 한 페이지 꽉 채워서 답변을 보내주곤 한다. 한국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데 한국 친구 하나가 이번달에 폴란드를 방문한다던가? 어쨌든 그 점은 좀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열심히 답변을 성심성의껏 보내주니까 좋은 펜팔 친구로 유지될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펜팔을 만드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먼저 다가가는 정성인 것 같다. 프로필 올려놓고 기다려봐야 먼저 다가오는 이는 많지 않다. 자기 프로필 사진이 완전 꽃미남, 꽃미녀가 아니라면 말이다. 메일을 보낼때는 자기 소개부터 정성을 들여야 그들 역시 정성스런 답변이 온다. 안 오는 경우도 있긴 하다만..

★★★ 펜팔 가장 사기 메일 ★★★
그러던 어느날 대뜸 내 메일주소로 직접 메일이 왔다. 인터팔에서 봤다는데 그 사이트에서 메일을 보낸 것이 아니라 직접 보내니 약간 의아한 감도 없지 않았다. 보통 정상적인 절차라면 상대방이 인터팔 사이트에서 내 프로필을 보고서 메일을 보내고, 그런 사실을 다시 인터팔측에서 알려주는 메일이 온다. 근데 이번 케이스는 상대방 프로필을 볼 겨를도 없이 무턱대고 다이렉트로 메일을 나한테 보낸 것이다.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직접 본 적도 없는데 My dear이니 진정한 사랑을 믿는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메일 여기저기에 들어있는 것이다. 내 프로필을 보고 푹 빠져들었다느니... 말도 안되는...ㅋㅋㅋ

일단 그쪽에 대해서 내가 아는게 전혀 없으니 소개를 좀 부탁했다. 며칠 후에 날아온 메일에는... 자신이 아프리카 수단에서 세네갈 다카르(랠리로 유명한)에 있는 난민촌으로 내전을 피해 온 피난민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무슨 정부의 어떤 관료였으며 회사의 중역이기도 했다는 둥의 이야기와 함께 어느날 아침 반란군이 들어닥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으며 자신만 홀로 남았다는 이야기. 그러면서 아래 사진을 첨부해왔다.


이제 자립을 해야하는 처지라면서 그렇게 끝을 맺었다. 근데 읽고 나서 좀 아리송한게 "난민이 인터넷 할 여유가 있나"라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사진 속 인물은 너무나 평화로운 배경으로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네갈 난민촌이 호수가도 있고 그렇게 좋은가? ㅋㅋ 뭐... 영어는 능숙해서 영어 읽기 연습은 잘 됐다만 어쨌든 사연이 딱하니 그냥 답장을 보냈다 - 전쟁이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한국도 북한과 분단된 나라로 항상 위협속에 산다. 블라블라... 잘 추스려서 독립하길 바란다는 둥. 일단 아직 답장은 안 왔다.

그리고 며칠 전 또 다른 이에게서 같은 형식으로 직접 메일이 왔다. 대뜸 My love 어쩌구 저쩌구를 외치는데 얘도 좀 스팸끼가 있다. 답장을 보내기를 - 난 사랑을 찾으려고 펜팔을 하는게 아니니까 친구로 펜팔을 하려는게 아니면 생각 다시 해봐라. 

그랬는데 오늘 답장이 왔다. 아래 사진 한 장과 함께. 근데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앞에 왔던 메일과 오버랩이 되면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앞에 왔던 메일과 한 부류라는 사실과 동시에 스팸메일 확정이요! 놀랍게도 똑같은 첫 문장. 

Hello my Dearest,
I am more than happy in your respond to my mail. How was your day?,

비교해보기 위해 먼저 보낸 여자의 메일 첫 문장을 첨부한다.

My Dear
 
I am more than happy in your mail. How do you do today? .


똑같지 않은가? 

그리고 네이버에 세네갈 난민촌 검색을 하는 순간 깨달았다. 두 번째 여자가 보낸 메일의 내용과 같은 메일 받은 사람이 많았다는 것. 그 내용인 즉슨, 자기의 죽은 아버지 (late father라고 앞선 여자도 똑같이 표현했었다)는 주 정부의 어떤 관료였으며 자신을 위해 유럽의 한 은행에 돈을 남겨놓았는데 자신은 피난민 신분으로서 행동에 제약이 있으므로 관련 서류 (사망증명서, 계좌내역)를 나에게 비밀스럽게 알려줄테니 그걸 인출해서 자기에게 붙여줄 수 있겠냐는 것이다. 남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알려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바보가 아닌 이상 여기까지만 봐도 낚시용 메일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엔 피난민이라는 딱한 사정을 봐서 읽었지만 이제는 답장의 필요성조차 못 느끼겠다. 얘는 르완다 출신이라는데 역시나 피난민 사정에 인터넷을 하는 것도 웃기고 무엇보다 부지기수로 이런 메일을 받았다는 사람이 많으니 긴 글의 작문까지는 고맙게 여긴다쳐도 넌 오늘부로 꽝이다~ 다른 사람들 얘기를 보니까 이  결말은 은행 송금 수수료를 일정액 부쳐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첫번째 애는 아직 이 얘기를 안 꺼냈지만 보나마나 다음 메일에선 그 부탁을 하겠지. 아프리카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이용하는 인간들이 있는 모양인데 어떤 인간인지는 몰라도 참 더러운 인간이다. 

찾아보니 실제로 세네갈 다카르에는 난민촌이 있다고 한다. 치안도 상당히 불안해서 외신기자들조차 보기 힘들다는데 이런 사람들이 인터넷을 쓴다는게 말이 되겠는가? 어디서 아프리카인들 이미지 사진을 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진짜 이런거 보내는 인간들은 난민촌으로 던져버려야된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펜팔이 이런 식으로 더러워져서 조금 씁쓸하다.



Posted by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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