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흥미를 잃어가는 한국축구
공은둥글다 - 축구 2008. 6. 11. 01:01 |
대부분의 우리나라 축구팬들에게 있어서 대표팀 경기는 그동안 K리그보다 훨씬 관중동원 능력도 좋았고 관심도 큰 경기였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94 미국 월드컵을 보며 대표팀에 대한 응원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다. 사실상 외국 축구는 그야말로 A매치가 아니면 접하기 힘들었던 1990년대만 하더라도 국대경기는 국민적 관심사를 끌 수 있는 축구경기였다. 마치 특별한 프로스포츠 경기가 없는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이 축구경기만 하면 벌떼처럼 흰옷을 입고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것처럼...
뭐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미디어가 교류하는 시대라서 유럽의 각 나라별 선진 축구를 안방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94 월드컵때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축구는 소위 말하는 소수의 "매니아"들이나 천리안, 나우누리 등의 온라인에서 의사소통하며 관심있게 보던 것에 한정 되어 있었다. 98 월드컵에서의 참담한 성적을 계기로 우리나라를 무참히 짓밟아버린 선진 유럽축구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슬슬 그들의 축구가 우리에게도 가까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 탑 클래스급 선수들이 2002 월드컵 이후 특출한 능력없는 아시아 선수들이란 유럽인들의 선입견을 깨고하나 둘 유럽 빅리그에 진출하면서 유럽축구로 인해 어느새 우리나라 축구팬들이 바라보는, 아니 원하는 축구수준은 선진축구 정도로 올라왔다. (나 역시 그런 편이고...) 그러다보니 요즘 국대경기를 보면 수준 낮아서 못보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인게 당연한 일이 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의 수준도 썩 나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다만 2002 월드컵 이후 국민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진 측면도 있고 일반적인 프로리그와 달리 1년에도 A매치 데이에나 간간히 몇 번 있는 국대경기는 서로 다른 팀에서 뛰던 선수들이 잠깐 모여서 손발을 맞추는 것이기때문에 프리미어리그급의 경기는 보여줄래야 보여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리그와 해외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기량 차이도 조금 있고 그것이 아직까지 조화롭게 서로를 보완해주는 매칭이 안되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내가 좋아하는 아스날의 감독 아센 웽거도 국대 감독을 맡지 않기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선수들을 국적에 상관없이 모아서꾸준하게 경기를 펼치며 손발을 맞출수가 있고 그런 가운데 그가 추구하는아름다운 축구가 완성될 수 있다는 그만에 지론에 따른 결과이다. 국가대표팀의 한계는 그런 것에 있는 것이다. 선수 개개인이 탑 클래스일수가 없다는 것이다. 축구 인프라가 거대한 유럽과 달리 빈약한 한국은 제아무리 국대라고 해도 유럽에서 뛰는 소수의 인원이나 세계적인 선수들과 몸을 부딪히며 꾸준히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반면 다른 선수들은 A매치나 되야 외국 선수들과 부딪혀볼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물론 K리그에서도 용병이 있지만 그들은 월드 클래스급이라고 보기엔 한계가 있고 그나마도 브라질 선수들이 태반이다.
요즘 국대경기를 보면 상당히 답답한 면이 많다. 누구나 그럴것이다. 오락처럼 깔끔한 패스에 그걸 딱딱 받아내는 선진 유럽축구를 보다가 한국 축구를 보면 동네 축구를 본다고 느껴질때도 있다. 언제부턴가 국대경기는 보더라도 골을 넣던 먹히던 감흥이 없어져버렸다.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이란 생각에 흥미를 갖고 보진 않는 편이다. 예전만 해도 한일전이 많았을때는 잠실에서 일본에 졌다하면 그다음날 학교에서 공부가 손에 안 잡힐정도로 열받곤 했었는데 요샌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그냥 국대니깐 한번 본다는 정도일까.
94 월드컵은 내가 5학년인가 6학년일때 미국에서 열렸다. 새벽 4시에 아버지가 TV보시는 소리에 자다가 깨서독일전을 보며 홍명보의 한방에 환호했었다. 그때는 축구선수 개개인보다는 팀웍이 만들어낸 골을 즐겁게 감상하던 때였다. 몇년전에 나이가 먹고서 94월드컵 볼리비아전을 볼 기회가 있었다.
어느정도 축구를 볼 줄 아는 안목(그래봐야 아마추어지만 ㅋ)과 사리분별이 가능한 나이대에 다시 보게 되었는데 솔직히 깔끔하지 못했던 마무리를 제외하면 경기력은 볼리비아를 3:0으로 깨부시고도 남을만한 모습이었다. 정말 인상적이었던건김주성, 홍명보, 고정운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거만한 모습 없이 90분 내내 공을 소유한 것을 떠나서 정말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경기 내용이 몇 년 지나니 기억은 자세히 나지 않는데 "열심히 뛰어다녔다"는 사실 하나만은 뇌리 속에 크게 각인된 것 같다. 현대 축구에서는 효율성을 위해 90분 내내 뛰는 것보다 필요할때 폭발적으로 뛰는 것을 추구하는 편이지만 공이 없는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줌으로서 패스할 공간이 생긴다는 점에선 차라리 그게 나을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요즘 선수들에겐 그런 것이 좀 부족한 것 같다. 무엇보다한국 축구만의 색깔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경기를 보면 대충 팀의 주요 전술이라던지 공격 루트가 보이게 마련인데 요즘 한국 축구는 아무런 색깔없는 무미건조한 축구를 한다. 앞에 선수가 막고 있으면 후방부터 보기 일쑤이고 타고난 드리블러도 없다. 차라리 특유의"패스를 앞세운 조직력"이라는 확연한 색깔을 가진 일본이 부럽다.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플레이스타일은 빠른 기동력과 정신력을 앞세운 스타일의"붉은 악마식 악바리"근성의 플레이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다.
한국축구를 보면 웬만한 중동권 약팀과 싸워도 개인기에선 밀리고 패스도 뻥패스가 잦을뿐 아니라 받는 선수가 불편하게 받을 수밖에 없는 패스를 자주 질러댄다. 개인기가 안되면 활동량과 조직력, 패스로 밀어붙여야하는게 팀플레이 축구인데 이 빌어먹을 이상한 학원축구로 다져진 우리 선수들은 기본기부터 미스를 범하곤 한다. 비교하기엔 좀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앙리가 클레르퐁텐(프랑스 축구협회 산하 아카데미)에 있을때 한달 내내 패스연습만 했다고 한다. 우린 하나도 제대로 못하면서 여러개를 한꺼번에 단기간에 배우려고 하진 않았을까. 어설픈 한국 축구의 인프라를 탓할수밖에 없다.
최근 경기를 보면 피파랭킹 100위권도 넘어간다는 대단하신 요르단(Jordan)을 맞아서 드리블 돌파해보려는 분이 손에 꼽는다. 개인 능력의 부재가 나타나는 것이다. 매번 아시아권 국가들과 경기할때마다 보이는 이른바 "떼축구"에 약한 한국 축구는 이번에도 간신히 얻어낸 패널티 2개로 2경기에서 1승 1무를 기록했다.
2002 월드컵 당시에는 강도높은 체력훈련과 히딩크의 수준 높은 전술 구사력을 밑바탕으로 4강까지 진출했는데 그 이후 한국축구는 색깔도 잃어버렸거니와 정신력으로 밀어붙일만한 큰 목표도 사라졌다. 축구선수는 부와 명예의 상징이라는 인식도 조금 강해져서 대표라는 스타의식만 가졌다뿐이지"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갖고서 뛰는 선수들은 많이 안보이는 것 같다.
그런면에서 2군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와서 국가대표에까지 다다른 이근호는 항상 성실하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은 것 같다. 조금 잘한다 싶으면 너도나도 유럽에 진출해서 유럽파라는 딱지를 달고 싶어하는 선수들에 비해 국가대표라는 동기유발이 잘 되어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안정환도 슬럼프를 극복하고 재승선한만큼 더욱 잘해야겠다는 목표의식이 뚜렷해보인다. 언제나 겸손한 박지성은 더블을 했음에도 국가대표팀에 와서 열심히 뛰어주고 있다.
허정무 감독은 아직까지도 조금 갈팡질팡하는 것 같다. 지난 요르단 1차전에서 보면 박주영은 슈팅감이 좋지 않았다. 프리킥과 양쪽 코너킥을 도맡아서 차고 있었는데 세트피스 상황에서 제대로 된 크로스와 슈팅이 나오질 않았다. 패널티킥마저 거의 가운데로 쏠렸는데 자칫하면 막힐뻔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던간에..) 김두현이 교체 투입된 상황에서도 박주영을 계속 세트피스 전담키커로 내세운건 조금 의아하다. 프리킥은 몰라도 코너킥은 김두현이 더 잘 찬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김두현보단 박주영의 헤딩력이 나았기때문이다.
교체투입된 김두현도 몸이 좀 무거워보였다. 차라리 이근호가 뛰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는데 어쨌든... 설기현을 뛰지 않게 한 것은 2차전을 보고서 충분히 이해할만한 선택이었다. 개인적으론 2차전을 본 결과 김남일은 수비형 미들보다는 공격형에 가까운 미들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수비만 볼때는 그냥 거칠게 플레이하고 상대선수 치고서 손한번 안잡아주는 거친 플레이어라는 인식만 남아있었고 존재감도 크진 않았지만 (주장으로서 정신적 지주이긴 하다만..) 2차전의 공격 가담시 패스 정확도가 괜찮았던 것 같다. 아직까지 슈팅은 이영표처럼 정확도와 강도가 10%급인듯 하지만... 중요한건 김남일도 2002년과는 달리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때문에 김남일에만 의존할게 아니라 수비형 미들 발굴과 육성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호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으려나...
수비진은 센터진이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곽희주는 공격 가담도 적극적인 나쁘지 않은 센터백이지만 아직까지 국대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공간을 내주는 문제를 드러냈다. 같은 수원선수인 이정수를 내세워 곽희주와 유기적인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한 것은 허정무 감독 나름의 선택이었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론 실패로 돌아갔다. 어찌보면 곽태휘나 강민수가 조금 그리워지는 시점이었다. 사이드백이었던 오범석이나 이영표야 원래 능력있는 선수들이니 손발을 맞추면서 좀 더 나아질 것 같다.
한국선수들은 고전적으로 동양선수의 특성답게 덩치가 큰 선수들이 적다. 키가 큰 선수들은 많아졌지만 중앙수비수 중에서 185cm를 넘는 선수가 아직까지도 많지가 않다. 양쪽 사이드백이야 오버래핑을 통한 공격가담 능력도 갖춰야하니깐 스피드를 갖춘 단신이어도 큰 지장은 없겠지만 여러 상황에서 공중볼을 클리어링해내야 하는 중앙 수비수들은 몸싸움도 잘하는 덩치 좋고 키큰 선수들이 필요한데 우리나란 그런 선수가 없어서 아쉽다. 부산에 정성훈이라는 공격수가 190cm 정도 되던데 어느정도 키도 크고 덩치도 좋아보인다. 아쉬운건 그가 공격수라는 사실... 그런 선수가 수비진에 있으면 상당히 든든할텐데 말이다. 이 상황에 캠벨이 떠오르는건 조금 오바일까...ㅋㅋ
여튼 월드컵 진출이라는 목표로 달려가고 있는 허정무호는 아직까지도 갈길이 태산이다. 최종예선은 5팀씩 2조로 나뉘어 각 조 1,2위 팀이 월드컵에 직행하고 각 조 3위 팀이 싸워서 이긴 팀이 오세아니아(거의 뉴질랜드 확정이지)와 겨뤄서 남은 한장을 겨루는 것 같던데 호주, 이란, 우즈벡, 사우디, 일본, 북한, 한국 정도가 경합대상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좀 불안불안하다. 정신력을 가다듬는데는 한일전만한 채찍이 없는데 90년대 이후 그런 맘졸이는 경기가 사라졌다. 국민적 관심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려면 정기적인 한일전이 부활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유럽 전지훈련도 좀 다니고...
좀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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